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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의 정치 포스터
김인철 교수의 사회 포스터의 세계(17)
2010-11-19 08:11:52 입력

아돌프 히틀러(1889  1945)

정치가들 중에는 체 게바라와 같은 영웅이 있을 수 있고 추악하고 잔인한 지도자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이다.

그에 대한 이미지들은 꽤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그것들 역시 체에 버금가는 확실한 정체성이 있다.

히틀러와 관련하여 나찌 시대에 제작되었던 포스터들

히틀러는 독일의 이른바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독일어 약자로 NSDAP)이 정권을 수립한 뒤 세계대전을 일으킨 사람이다.

그는 1939년 9월 1일, 선전 포고도 없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서 정복을 시작했다. 이는 소련의 스탈린이 히틀러와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고 폴란드를 히틀러에게 나눠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영국과 프랑스는 폴란드와의 군사조약을 맺고 있었으나 소련과의 협의 없이는 힘들다는 이유로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또한 미국은 국내 여론 때문에 고립주의를 천명하며 직접 개입을 삼가고 있었다. 공습 및 기계화 부대의 신속한 기동력이 결합한 "전격전"이라는 새로운 전법으로 독일은 벨기에와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로부터 항복을 받아내었으며 프랑스까지 차지하였다. 1940년 말까지 히틀러는 서부 유럽과 북부 유럽 전체(중립국인 스페인, 포르투갈, 스위스, 스웨덴은 제외)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우세한 공군력을 쏟아 부어 폭격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을 차지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어 1942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왕국과 그리스 왕국을 공격하여 항복을 받아내었다. 연합군의 마지막 보루인 영국에 공습을 퍼부어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려는 배틀 오브 브리튼(Battle of Britain)이 실패했음에도 히틀러는 1941년 6월 22일,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소련을 침공했고, 10월에는 모스크바 근처까지 진격했다. 그러나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소련의 무시무시한 겨울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고 같은 해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함으로써 전쟁은 전기를 맞게 되었다. 나흘 후 히틀러는 미국에 선전 포고를 했다. 그러나 이후 허스키 작전에서 남부 이탈리아에 상륙한 연합군에 밀린 이탈리아가 영국군에 항복했다.

이어서 전개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 그리고 1944년 거의 같은 시기에 연합군이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독일군을 독일 본토 끝까지 밀어붙여 베를린을 점령함으로 유럽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은 끝이 났다. 1945년 4월 30일 절망한 히틀러는 지하 벙커에서 권총으로 자살하게 된다.

우리는 다른 매체들이 아닌, 포스터들을 통하여 독재자 히틀러의 강력한 정체성을 잘 알고 있다. 엄정하게 빗어 내린 검은 머리, 냉정하며 어딘가 잔인함이 풍겨 나오는, 그리고 직관적인 두 눈은 약간 부릅뜨고 있다. 그의 콧수염은 카리스마의 결정적 포인트이며 옷은 늘 단정한 독일 군복이다. 한 손을 들고 독일인들을 이끌고 있는 모습을 여럿 볼 수 있다.

금발 소년이 있는 이미지는 총통(Fhrer)에 충성하는 소년대를 위한 포스터(좌)이며 오른쪽은 나찌당의 포스터이다. 모두 그의 이미지가 주요 주제이다. 이렇게 확실한 정체성은 이후 제작된 히틀러 패러디 또는 반 히틀러 이미지들과 견주어 봐도 알게 된다.

그의 일대기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있는데 바로 미술에 대한 집착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소년 시절 미술대학에 가고 싶어 했었다. 하지만 폭압적인 아버지의 반대와 낙방의 고배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만일 그가 원했던 대로 미술을 전공하였다면 아마 세계 역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는 못다 이룬 꿈을 정치에서 이루고자 부단한 노력으로 능력 이상의 결과를 남겼다.

그래서인지 그가 남긴 유산 들 중 미술과 디자인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명작들이 많다. 복식은 물론, 심지어 자동차들까지, 그리고 나찌 관련 시각 이미지들 및 포스터들이 그렇다.

존 허트필드(John Heartfield)의 작품인 ‘금화를 잔뜩 집어삼킨 독재자 히틀러’(좌)와 정치적 목적의 히틀러 패러디 작품

무릇 모든 독재자들이 그랬듯이, 히틀러 반대자들도 꽤 있었다. 대표적인 포스터 작가가 바로 존 허트필드이다. 그는 독일 사람이었다. 그러나 히틀러의 독재에 반대하는 작업을 하다가 영국으로 망명하여 이름까지 바꾸었으며, 적지 않은 반 히틀러 포스터 이미지들을 남겼다.

바로 위의 왼쪽 작품이 그가 만든 대표적 히틀러 반대 포스터이다. 전쟁 경비를 마련하고자 국민을 쥐어짜고 있는 히틀러의 몸부림이 인상적이다. 그의 허파에는 금화들이 잔뜩 들어가 있다. 연설로 유명한 그가 입을 열기만 하면, 막대한 돈이 그에게 들어온다는 이미지인 것 같다. 필자는 문득 이 포스터를 보면서 북한의 김정일이 생각났다.

오른쪽 작품은 아마도 고용과 관련된 작품인 것으로 보인다. 계속 해고한다면, 마치 히틀러의 장갑차들이 내려앉는(전쟁에 패배하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된다는 뜻인데 장갑차(panzer)가 팬츠로 은유된 표현이 재미있다.

히틀러 이미지를 통하여 미국 정치를 풍자한 작품들

마지막 작품들은 미국의 정치 관련 포스터이다.

왼쪽의 이미지는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미국 대통령 선거 포스터들 중 하나로 그가 외친 구호가 바로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이었다. 구호 위에 히틀러의 이미지를 집어넣었는데 독재자를 만들 수 있다는 이미지 아닐까? 물론 반대당 또는 반대하는 단체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오른쪽 것은 히틀러가 미국을 침공할 것이라는 것에 대하여 ‘미국은 뭐라 말할 것인가?’라는 포스터이다. 2차 세계대전 중 사태의 심각성을 국민들에게 알리던 이미지였던 것 같다.

아무튼 모두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포스터들이다.

◇김인철 교수

**글쓴이 김인철 교수는 전주비전대학교 시각문화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코카뉴스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인철 교수 약력> : 홍익대 미대 졸업. 한국최초 사회부문 국제 포스터 작품선정 작가(일본 도야마), 한국미협 이사 역임. 캐나다 Simon Fraser University 연구교수. 개인전 1회(캐나다 밴쿠버). 일본 외 멕시코,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이란, 타이완, 중국, 미국 등지의 국제포스터 공모전 작품선정 작가(모두 사회적 주제)

2010-11-19 08:25:54 수정 김인철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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